잘 나가던 싸움은 왜 숫자의 게임이 되었는가

- 12월 23일 파업 유보 이후, 한 조합원의 질문
Opinion 2026년 1월 6일
본 기사는 웹진 메인화면 최하단부의 익명이 보장되는 독자투고 링크를 통해 기고받은 글을 토대로 생성형 AI와 편집부의 검토로 완성한 기사입니다. 조합원의 다양한 소리를 듣고, 또한 작고 간단한 아이디어로도 기사를 작성할 수 있는 증거로서 여러분께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정상화라는 원칙과 우리가 만든 프레임

우리는 성과급의 정상화를 불가침의 원칙으로 설정했다.

그동안 우리가 불러왔던 ‘12/15’, ‘기본급 80%’ 같은 표현들은 본질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정상과 비정상의 대립을 설명하기 위한 언어였고, 핵심은 단 하나였다. 왜 철도 노동자만 15년 동안 성과급에서 차별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이 프레임은 정확했고 강력했다. 젊은 조합원들에게는 명확한 설명이 되었고, 현장에서는 설득의 언어로 작동했으며, 그 결과는 역대 최고 수준의 파업 동의 투표로 확인되었다. 이 점은 중앙쟁대위 역시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언급한 사실이다.

이 싸움은 내부에만 머물지 않았다. 블라인드와 각종 커뮤니티, 기사 댓글에서는 “왜 철도만 이러느냐”, “왜 공공기관 중에서도 철도만 15년을 맞았느냐”는 질문이 반복되었다. 파업과 파업 유보를 둘러싼 불만과 피로감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번 국면에서 공공기관 성과급의 의미와 철도공사의 구조적 차별은 이전과는 다른 수준으로 사회적으로 공유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싸움은, 의도했든 아니든, 조합원 수가 가장 많은 철도노조가 공공기관을 대표해 기재부와 맞서는 대리전의 양상으로까지 번졌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는 숫자를 조심했다. 100%라는 표현조차 쉽게 쓰지 않았다. 우리가 고집한 언어는 어디까지나 ‘온전한 정상화’였다. 숫자를 말하는 순간, 이 싸움이 원칙의 문제에서 협상과 흥정의 문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현장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2월 23일, 숫자로 제시된 결론

그런데 12월 23일 새벽, 우리가 받아든 결론은 분명한 숫자였다.
2026년 성과급 90% 지급, 부족분 10%는 총인건비 외 별도 지급.
2027년부터 성과급 100% 지급.

이 문장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의 머릿속은 동시에 멈췄다. 우리가 그토록 외쳤던 정상화는 언제부터 이런 구조가 되었는가.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었다. 이 합의는 누가 보증하는가. 2026년과 2027년의 성과급 지급을 담은 이 약속이 법적으로 효력을 갖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아직 위임도 되지 않은 차기 사장이 이 합의를 실제로 이행할 책임을 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피할 수 없다.

올해 미지급 성과급과 임금 인상분이 지급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경영평가의 주체인 사장이 부재한 부사장 대행 체제라는 특수한 조건이 있었다는 점이 현장에서도 공유되고 있다. 그렇다면 내년에 임명될 사장이, 경영평가의 직접 당사자인 그 사장이, 동일한 부담을 감수하며 이 합의를 이행할 수 있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는가.

기재부에 대한 신뢰는 왜 여전히 문제인가

그리고 문제는 기재부다. 12월 11일에는 공운위 상정이 지켜지지 않았고, 12월 24일에 상정하겠다는 말이 돌던 와중에도 실제로는 ‘90%’ 안으로 12월 23일 상정을 시도하려 했던 정황이 있었다. 이를 알아차린 12월 18일, 이미 한 차례 파업을 유보했던 중앙쟁대위는 다시 파업을 급박하게 준비하며 기재부의 기만과 배신을 공개적으로 성토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러한 전력이 누적된 기재부가, 불과 며칠 만에 태도를 바꾸고 약속을 이행할 주체로서 신뢰를 회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보고 그 약속을 믿어야 하는가.

더구나 현 정부가 칼을 빼들고, 이르면 내년부터 기재부의 권한을 축소하거나 조직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국면에서 이번 합의를, 기재부가 장기적으로 책임질 제도적 결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조직 개편과 권한 재편을 앞둔 부서의 국면 관리용 선택으로 봐야 하는지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약속을 전제로 투쟁을 멈추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번 합의는 문서화된 투쟁 동력을 남기기 위한 선택이었는가. 지켜지지 않으면 다시 파업하면 된다는 판단이었는가. 그렇다면 이것은 또 하나의 ‘파업 유보’와 무엇이 다른가.

특히 파업 당일 새벽마다 유보가 반복되며 현장의 신뢰가 소진되어 온 상황에서, 다시 파업 투쟁을 호소할 때 그 무게가 이전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러한 반복이 누적된다면, 그 책임은 지도부 개인을 넘어 조직 전체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다시 숫자의 프레임 안으로

12월 18일 당시, 현장에서는 최악의 경우까지 각오하고 있었다. 올해를 넘기더라도, 임금이 동결되더라도, 이 차별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기록을 파업이라는 투쟁으로 남기겠다는 결기였다. 그 각오를 접을 만큼 중앙에서는 어떤 판단이 있었던 것인가. 무엇이 이렇게 다급한 마무리를 요구했는가.

그리고 결국 가장 핵심적인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정상과 비정상의 명확한 선악 대립 구도를 벗어던지고, 왜 우리는 다시 숫자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는가.

정말 협상이라면 왜 처음부터 150이나 200을 부르지 않았는가. 연봉협상이나 임금인상률처럼 흥정을 전제로 하는 게임이라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터무니없이 높은 수치를 던지고 시작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정상화라는 단어를 내려놓는 순간, 이 질문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그 순간부터 정상화는 더 이상 원칙이 아니라 가격표가 된다.

90이든 99든 완전하지 않으면 정상화가 아니다. 그러나 숫자의 프레임 안에서는 99는 더 이상 차별이 아니라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느냐”는 합의점으로 바뀐다. 이제 우리는 기재부뿐 아니라, 숫자로 인식하기 시작한 사회의 시선과도 동시에 싸워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 프레임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선전과 지부와 중앙의 성명, 무엇보다 위원장의 호소 속에서 노동조합이 정교하게 구축해 온 것이었다. 그렇기에 12월 23일 파업 유보 직후 발표된 승리 선언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승리했다고 말하는가. 우리는 왜 승리했다고 말하는가. 그 승리는 누구의 언어로 정의된 것인가.

이번 인준 과정에서 도입된 모바일 투표 방식은 오프라인 기표 투표에 비해 참여 문턱이 현저히 낮다. 그 결과 투표 참여율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찬반으로만 구성된 가부 투표는 구조적으로 찬성이 우세하게 나타나기 쉬운 형태다. 특히 투표 직전에 승리 선언이 먼저 발표된 상황에서, 찬성과 반대가 선과 악처럼 대비되는 구도로 투표가 설계된 것은 아닌지에 대한 문제 제기를 피하기 어렵다.

승리 선언 이후 곧바로 총투표가 진행되고, 압도적인 인준 찬성 결과가 도출된 뒤, 이를 다시 조합원들의 신뢰와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하고 감사의 언어로 되돌려주는 일련의 흐름은 우연의 연쇄로만 보이지 않는다. 이 결과를 곧바로 지도부에 대한 전면적 신임이나 투쟁의 승리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분명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나아가 이것이 투쟁의 방향과 출구를 잃은 조합원들의 피로와 수용의 결과는 아니었는지,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물어야 한다.

그럼에도 분명히 하고 싶은 점이 있다. 나는 지도부가 사리사욕으로 판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과정과 부담, 책임의 무게를 감안할 때 이 판단을 개인적 이익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현실을 단순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묻고 싶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잘 나가던 판을 뒤엎고, 스스로의 말을 사실상 없던 것으로 만들 만큼 결정적이었던 이유를.

나는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함께 파업을 준비했고, 같은 구호를 외쳤던 조합원이다. 이 정도의 질문을 던질 권리는, 조직을 지켜온 조합원에게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전국철도노동조합 조합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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