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쓰인 시점에서 고속철도 통합은 중요한 현안이었습니다. 철도노조가 오랫동안 요구해 온 것도 분명했습니다. 쪼개진 고속철도 운영체제를 다시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다른 문턱에 서 있습니다. 고속철도 통합은 더 이상 먼 요구가 아니라 가시화된 변화가 되었고, 현장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통합하자”에서 “통합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연재에서 SRT 문제를 길게 되풀이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하나의 사례를 넘어서는 더 큰 질문입니다. 철도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쪼개기의 대상이 되었는가. 그리고 반대로 통합은 언제나 좋은가.
보고서의 2부는 지난 20여 년 동안 철도산업을 지배했던 구조개혁의 논리를 비판합니다. 그 핵심은 분리와 경쟁이었습니다. 운영과 시설을 나누는 상하분리, 운영사를 나누는 수평분리, 신규 노선 입찰제, 민간투자, 자회사화, 외주화, 기능별 분리.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방향은 비슷했습니다. 철도를 하나의 통합 네트워크로 보지 않고 기능별·회사별·노선별로 나누어 경쟁시키려 했습니다.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효율이었습니다. 독점은 비효율적이고 경쟁은 효율을 만든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철도는 그렇게 단순한 산업이 아닙니다. 철도는 선로, 차량, 관제, 역, 정비, 전기, 신호, 통신, 운전, 영업, 물류가 서로 맞물려야 굴러가는 네트워크 산업입니다. 어느 한 부문만 떼어내 효율을 계산하면 전체 안전과 연결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고서는 특히 유럽식 상하분리와 경쟁체제가 한국에 무리하게 적용되었다고 봅니다. 유럽의 철도 개혁은 국경을 넘는 대륙철도망을 전제로 했습니다. 각국 운영사가 서로 다른 나라의 철도망에 진입할 수 있도록 시설과 운영을 분리하는 논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그런 조건이 아닙니다. 주변국과 자유롭게 오가는 국제철도 시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운영사가 자연스럽게 들어와 경쟁할 만큼 거대한 철도시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한국은 유럽의 개방과 경쟁 논리를 가져와 국내 철도 운영기관을 나누는 근거로 삼았습니다. 유럽의 조건은 빠지고 경쟁이라는 구호만 남은 셈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쪼개기의 논리가 고속철도 운영사 하나에만 그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보고서는 철도물류 자회사, 차량정비 및 임대부문 자회사, 시설유지보수 분리, 간선 중심 지주회사 전환 같은 방안이 제시되었다고 정리합니다. 고양고속차량지부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입니다. 철도물류도, 차량정비도, 시설유지보수도, 임대부문도 분리의 대상으로 검토된 적이 있습니다. 오늘 고속철도 통합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내일 차량정비와 시설유지보수를 둘러싼 구조개편 논리가 사라진다고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여기까지가 이 책이 주로 비판하는 과거의 논리입니다. 공공기관이 방만하다고 말하고, 경쟁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민간과 비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다음 조직을 쪼개고 기능을 분리하고 자회사를 만들고 입찰을 붙입니다. 이름은 효율화이고 포장은 경쟁력 강화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결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책임은 흩어지고 안전의 경계는 흐려지고 업무 사이의 연결은 약해집니다. 사고가 나면 모두가 연결되어 있었지만 책임을 물을 때는 모두가 서로 다른 회사, 다른 계약, 다른 부서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흐름은 반드시 쪼개기만은 아닙니다. 최근 항만과 공항 등 공공기관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오히려 통합과 기능조정이 자주 등장합니다. 명분은 중복 제거와 규모의 경제, 기능 효율화입니다. 그러나 이름은 같아도 각 기관이 맡은 지역과 산업, 전문성이 다릅니다. 그런 조직을 한데 묶은 뒤 효율화를 말하면 현장에서는 구조조정과 기능축소를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통합이라도 어느 위치에서 보느냐, 무엇을 목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됩니다.
과거의 위험이 “쪼개서 경쟁시키기”였다면 현재 또는 앞으로의 위험은 “묶어서 효율화하기”일 수 있습니다. 두 방식은 겉으로 보면 반대입니다. 하나는 나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합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보아야 할 핵심은 형태가 아닙니다. 쪼개든 묶든 그 결과가 현장을 지우고 안전을 압박하고 전문성을 약화시키고 노동조건을 낮춘다면 둘 다 문제입니다. 분할은 책임을 흩뜨릴 수 있고, 통합은 현장을 중앙의 효율화 논리 아래 밀어 넣을 수 있습니다. 경쟁은 민간과 비교해 공공성을 깎을 수 있고, 통합은 중복 제거라는 이름으로 필요한 인력과 기능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은 철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의 철도망을 여러 운영기관이 나누어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중복 비용, 좌석 배분의 불편, 수익노선과 비수익노선의 분리, 일반열차와 화물열차의 축소 압력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통합 운영은 철도 네트워크의 공공성과 연결성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조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통합이 곧바로 공공성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통합 이후에 “이제 하나가 되었으니 중복을 줄이자”, “비효율 부문을 정리하자”, “정비체계를 재배치하자”, “기능을 표준화하자”는 말이 따라붙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노동조합이 기준을 잃으면 통합은 공공성 강화가 아니라 또 다른 효율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분할도 언제나 같은 모양으로 오지는 않습니다. 별도 운영사를 세우는 방식일 수도 있고, 민자노선 확대일 수도 있고, 특정 기능의 자회사화일 수도 있고, 유지보수 일부 외주화일 수도 있습니다. 차량정비와 시설유지보수처럼 현장 전문성이 핵심인 영역에서는 이런 분할이 특히 위험합니다. 열차는 운행부문만으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차량이 있고, 선로가 있고, 전기가 있고, 신호가 있고, 통신이 있고, 관제가 있고, 검수가 있습니다. 이 연결을 비용 항목별로 쪼개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회계상 효율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고는 회계표대로 나지 않습니다. 사고는 연결이 끊어진 지점에서 납니다. 누군가의 업무가 아니게 된 빈틈, 계약서에는 없지만 현장에서는 반드시 필요했던 조정, 서로 다른 회사와 부서 사이에서 밀린 책임이 사고의 형태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책은 철도화물의 쇠퇴를 구조개혁의 실제 결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징후로 듭니다. 철도화물 수송량은 1990년 무렵을 정점으로 30년 넘게 감소했고, 핵심 화물인 컨테이너조차 줄었습니다. 화물취급역은 2011년 127개에서 2023년 71개로 거의 절반이 되었습니다.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운행과 역을 줄이고, 줄어든 서비스 때문에 다시 수요가 빠지고, 수요가 빠졌다는 이유로 또 줄이는 축소의 순환이 이어진 것입니다. 구조개편이 장부를 정리할 수는 있어도 국가 물류망의 공공성을 대신 지켜주지는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의 입장은 단순해야 하면서도 정교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조건 분할 반대, 무조건 통합 찬성이라는 구호에 머물 수 없습니다. 분할이 민간 경쟁과 외주화로 이어진다면 반대해야 합니다. 통합이 공공성 강화와 안전투자 확대가 아니라 인력감축과 기능축소로 이어진다면 그것도 반대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구조개편의 이름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그 변화가 철도망의 통합성을 높이는가. 공익서비스 책임을 국가가 제대로 부담하게 만드는가. 정비와 유지보수의 전문성을 강화하는가. 안전 책임을 명확히 하는가. 현장 노동자가 더 나은 조건에서 더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개편은 어떤 이름을 붙여도 위험합니다.
고양고속차량지부의 위치에서 보면 이 문제는 더욱 구체적입니다. 통합 이후 열차 운용, 차량 배치, 정비 물량, 기지 운영, 검수체계, 부품 수급, 교육훈련은 모두 다시 조정될 수 있습니다. 통합은 운행표와 좌석 판매 시스템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통합은 결국 정비고로 내려옵니다. 어느 차량을 어디서 맡을 것인가, 어떤 검수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 기존 인력으로 감당 가능한가, 새로운 차량과 기존 차량이 함께 들어오는 상황에서 교육과 설비는 준비되어 있는가. 통합이 공공성을 강화하는 길이라면 현장에 필요한 조건을 함께 가져와야 합니다. 조직도 정리와 비용 절감으로만 내려온다면 현장에는 또 다른 부담만 남습니다.
철도노동자는 쪼개기에만 반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묶는다는 말에도 무조건 박수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조개편의 실제 내용을 따지는 사람입니다. 공공성 없는 경쟁에 반대하고 현장 없는 통합에도 반대합니다. 안전을 강화하는 통합, 전문성을 살리는 통합, 공익서비스 책임을 국가가 지는 통합, 정비와 유지보수의 역량을 키우는 통합이라면 철도의 미래를 여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인력과 비용을 줄이는 통합이라면 다른 얼굴을 한 구조조정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