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그린 철도의 미래, 현장은 무엇을 물어야 하나

탄소중립 공공 모빌리티, 5×7 그물망 철도, 규칙시각표, 그리고 차량정비의 질문
집중기획 3부작 KTX 사장의 철학을 엿보다 2026년 7월 10일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3부입니다. 1부가 한국 교통체계의 현실을 진단하고 2부가 철도구조개혁 20년의 문제를 점검했다면, 3부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연재의 마지막도 단순히 “현장에 부담이 온다”는 이야기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먼저 책이 그리는 미래를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미래가 얼마나 큰 구상인지, 또 그 구상이 현실이 되려면 무엇이 따라와야 하는지 물을 수 있습니다. 고양고속차량지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차량정비의 질문은 철도 미래 구상 바깥에 있는 지부 요구가 아닙니다. 그 미래를 실제로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조건입니다.

탄소중립 공공 모빌리티와 철도수송분담률 50%

보고서 3부의 핵심 표현은 “탄소중립 공공 모빌리티”입니다. 말은 큽니다. 그러나 풀어보면 어렵지 않습니다. 개인 승용차 중심의 이동체계를 탄소 배출이 적은 철도와 공공교통 중심의 이동체계로 바꾸자는 말입니다. 여기서 모빌리티는 새 교통서비스나 앱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이동하고, 도시가 어떻게 짜이고, 통근과 출장과 물류가 어떤 수단을 통해 이루어지는가까지 포함합니다. 보고서는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기차 보급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바꾸어도 도로와 주차장, 배터리와 전력, 도시 확산과 교통 혼잡의 문제는 남습니다. 그래서 이동의 수단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전략이 모달시프트(철도중심 전환)입니다.

보고서가 제시하는 양적 목표는 더 과감합니다. 2050년까지 철도수송분담률 50%를 달성하자는 것입니다. 처음 들으면 비현실적으로 보입니다. 지금도 많은 지역에서 자동차 없이는 생활하기 어렵고, 철도는 서울과 주요 거점을 연결하는 데 집중되어 있습니다. 보고서도 지역 안의 짧은 이동까지 철도가 모두 담당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고속철도, 지역 간 철도, 광역철도, 도시철도가 확충된다면 여객 부문 철도수송분담률 50%는 불가능한 수치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측이 아니라 결심입니다. 수요가 생길 때까지 기다린 뒤 공급하는 방식으로는 전환이 오지 않습니다. 공공교통 중심 사회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먼저 세우고 공급과 도시계획을 그 방향에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승용차 중심 교통에서 2050년 공공교통 중심으로 수송분담률이 전환되는 목표 그래프

철도노동자의 입장에서도 이 목표는 반가우면서 동시에 부담스럽습니다. 철도수송분담률 50%. 듣기에는 좋습니다. 그러나 열차가 더 많은 사람을 태우고, 더 많은 지역을 연결하고, 더 촘촘한 시간표로 움직인다는 것은 단지 승객 수가 늘어난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차량이 더 많이 돌고 정비의 빈도와 압력이 커지며, 고장 하나가 전체 망에 주는 파급이 커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시민에게 철도가 일상의 기본값이 되려면 더 자주, 더 정확히, 더 안전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그 요구는 운전실로, 관제실로, 역으로, 선로로, 전기·신호·통신 설비로, 그리고 차량정비단으로 내려옵니다.

서울로 모이는 나무에서 지역을 잇는 그물로

보고서가 제시하는 공간 구상은 4중 네트워크입니다. 전국망, 초광역망, 광역망, 도시망을 나누어 각각의 역할을 부여합니다. 전국망은 고속철도 중심으로 먼 거리를 빠르게 연결합니다. 초광역망은 반경 30~100km 정도의 권역을 이어 GTX급 또는 현대화된 지역 간 열차의 역할을 합니다. 광역망은 연담도시권의 통근과 생활권 이동을 담당합니다. 도시망은 역간 거리가 짧고 도보 접근이 가능한 생활권 철도를 뜻합니다. 쉽게 말하면 서울 가는 철도만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전국, 권역, 도시, 생활권을 각각 다른 속도와 밀도로 연결해 자동차가 아니어도 이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 구상에서 보고서가 가장 강조하는 이미지는 “나무에서 그물로”입니다. 지금 한국철도는 경부선 중심의 나무 구조에 가깝습니다. 줄기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뻗고 가지들은 그 줄기에서 갈라집니다. 이 구조에서는 서울과 지역을 직접 연결하는 힘은 강하지만 지역과 지역을 가로지르는 연결은 약해집니다. 보고서는 이런 구조가 서울 빨대효과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지역이 서울과만 강하게 연결되고 지역 사이의 분업과 교류는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부·호남고속선이라는 기존 두 축을 유지하되, 이를 보완하는 5×7 그물망 철도를 제안합니다. 5개 남북축과 7개 동서축으로 전국토를 더 균등하게 연결하자는 구상입니다.

서울 중심의 나무형 철도망과 지역 간 연결을 강화한 그물망 철도망 비교

열차가 많지 않아도 외울 수 있는 철도

그물망 철도는 듣기에는 멋지지만 곧바로 현실의 문제가 따라옵니다. 모든 노선에 경부선처럼 많은 열차를 넣을 수는 없습니다. 수요가 적은 지역에도 철도를 깔아야 하고 지역 간 연결을 만들려면 열차 수가 많지 않은 노선도 운영해야 합니다. 여기서 보고서가 꺼내는 개념이 규칙시각표입니다. 열차가 많지 않다면 오히려 시민이 기억하기 쉬운 시간표가 중요합니다. 남북 방향 노선은 매시 정각 또는 30분, 동서 방향 노선은 15분 또는 45분에 주요 역을 출발하도록 맞추자는 구상입니다. 그렇게 하면 열차가 아주 많지 않아도 전국의 환승과 연결을 일정한 박자로 맞출 수 있습니다. 철도가 “있기는 한데 언제 오는지 모르는 수단”이 아니라 “외울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남북 방향과 동서 방향 열차가 일정한 시각에 환승역에서 연결되는 규칙시각표 도식

철도의 경쟁력은 최고속도만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시민이 역에 도착했을 때 다음 열차가 언제 오는지 예측할 수 있는가, 환승이 맞물리는가, 목적지 도시에서 버스·자전거·도보와 연결되는가, 지방에서도 철도가 일상의 시간표가 될 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빠른 열차 몇 편만으로 자동차 중심 사회를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철도는 속도와 함께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 규칙시각표는 그 신뢰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보고서는 여기에 통합 대중교통체계도 붙입니다. 철도만 깔아서는 모달시프트(철도중심 전환)가 되지 않습니다. 역에서 내려 목적지까지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지방도시의 역이 도심과 떨어져 있고, 역 앞에 버스가 제대로 맞지 않고, 자전거와 보행 접근이 불편하다면 철도는 여전히 승용차 환승용 외곽 주차장이 됩니다. 그래서 철도역을 중심으로 버스, 자전거, 개인형 이동장치, 공유 전기차, 환승센터, 도시교통계획을 함께 묶어야 한다고 봅니다. 철도를 중심으로 도시와 이동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미래는 정비고에서 검증된다

여기까지가 책이 그린 미래입니다. 크고 멀고 쉽지 않은 구상입니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무엇을 물어야 합니까. 고양고속차량지부의 눈으로 보면 이 미래는 곧 정비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철도수송분담률 50%, 5×7 그물망, 규칙시각표, 통합 대중교통망. 이 말들은 노선도와 시간표의 언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다르게 번역됩니다. 열차가 더 많이 달린다는 것은 차량 회전율이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열차가 더 정확히 달려야 한다는 것은 정비 품질 하나가 운행 신뢰도 전체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노선이 그물망으로 늘어난다는 것은 차량 종류와 운용 패턴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환승이 촘촘해진다는 것은 지연 하나가 더 많은 연결을 흔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모달시프트(철도중심 전환)가 진짜라면, 차량정비는 후방 업무가 아니라 철도 미래의 핵심 안전 인프라다.
철도수송 확대와 그물망 철도, 규칙시각표의 미래를 차량정비 노동이 떠받치는 모습

이 문장은 고양고속차량지부의 이해관계만을 말하는 문장이 아닙니다. 철도 미래 구상 자체의 조건을 말하는 문장입니다. 시민은 정비를 보지 못합니다. 시민은 표를 사고 열차를 타고 제시간에 도착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보이지 않는 정비 위에 서 있습니다. 열차가 늘어나고 운행이 촘촘해지고 시간표가 규칙화될수록 정비의 중요성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커집니다. 차량 상태가 안정적이어야 시간표가 지켜지고, 부품 수급이 안정적이어야 검수가 밀리지 않으며, 교육훈련이 충분해야 새 차종과 복잡한 시스템을 안전하게 다룰 수 있습니다. 철도망의 신뢰는 정비고에서 만들어집니다.

모달시프트(철도중심 전환)는 단지 영업이나 정책기획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많은 사람이 철도를 타게 하려면 더 많은 열차를 안정적으로 굴려야 하고, 더 많은 열차를 안정적으로 굴리려면 정비체계가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사장이 안전을 말하고 첨단기술을 말하고 작업환경 개선을 말한다면 그 말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말은 현장에서 검증되어야 합니다.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말한다면 정비현장의 인력과 시간과 설비와 교육도 최우선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탄소중립 공공 모빌리티를 말한다면 그 공공교통을 유지하는 노동의 지속가능성도 함께 말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의 질문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철도수송분담률 50%를 말하려면 정비인력도 그에 맞게 늘어나는가. 5×7 그물망 철도를 말하려면 다양한 노선과 차량 운용을 감당할 정비기지와 검수체계는 준비되는가. 규칙시각표를 말하려면 정비 지연과 부품 부족으로 운행 안정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어떤 투자를 할 것인가. 새 차종이 들어오면 교육훈련은 노동시간 안에서 충분히 보장되는가. 자동진단과 예지정비 기술이 들어온다면 그것은 인력감축의 근거가 되는가, 아니면 숙련을 지원하고 사고를 줄이는 도구가 되는가. 현장에 묻지 않는 미래 구상은 결국 현장에 부담으로 내려옵니다.

특히 차량정비는 비용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공기업 경영평가의 표에서 정비는 인건비, 부품비, 설비투자, 교육비, 외자 물품 재고, 검수시간 같은 비용 항목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철도망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신뢰를 만드는 투자입니다. 정비가 부족하면 열차는 멈추고, 열차가 멈추면 시간표가 깨지고, 시간표가 깨지면 시민은 다시 자동차로 돌아갑니다. 모달시프트(철도중심 전환)가 목표라면 정비를 줄여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강화해야 합니다. 철도 중심 사회는 열차를 많이 사는 것으로만 오지 않습니다. 그 열차를 안전하게 유지할 능력이 있을 때 옵니다.

이것이 고양고속차량지부가 이 책을 읽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 현장의 물량이 늘어날까 봐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철도의 미래를 말하는 사람들이 정비를 미래의 중심에 놓고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사장의 철학이 모달시프트(철도중심 전환)라면 그 철학은 노선도와 보도자료에서만 검증되지 않습니다. 정비고에서 검증됩니다. 충분한 인력, 충분한 교육훈련, 충분한 검수시간, 안정적인 부품 수급, 안전한 작업환경, 산업재해를 막을 수 있는 설비와 절차가 함께 제시될 때 모달시프트(철도중심 전환)는 비로소 현장의 언어가 됩니다.

3부작을 마치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모달시프트(철도중심 전환)는 차 중심 사회에서 철도와 공공교통 중심 사회로 이동의 기준을 바꾸자는 말입니다. 그 방향은 크고 필요하며 철도노동자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을 구호로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1부에서 보았듯 가능성을 따져야 하고, 2부에서 보았듯 구조개편의 방향에 따라 공공성이 될 수도 또 다른 효율화 압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3부에서 보았듯 그 미래는 차량정비와 안전투자 없이는 현실이 될 수 없습니다.

철도가 미래라면, 차량정비도 미래여야 한다.
3줄 요약

책이 그린 미래는 철도수송분담률 50%와 그물망 철도다.
규칙시각표와 통합 대중교통망이 그 미래를 움직인다.
그러나 철도의 미래는 정비고에서 검증된다.

집중기획 3부작 | KTX 사장의 철학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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